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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일간신문 <조보> 국제학술심포지움 개최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636

1. 회원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2. 한국언론정보학회는 영천역사박물관과 공동주최로 제5회 민간인쇄조보 국제학술심포지움 <16-17세기 인쇄미디어의 역사: 독일, 중국, 일본, 한국을 중심으로>를 다음과 같이 개최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다     음 ▶  

   

세계 최초 일간신문 조선 1577년 「민간인쇄조보」  

제5회 국제학술심포지움 개최  

 

◎  ‘제5회  「민간인쇄조보」 국제학술심포지움’ (주최: 영천역사박물관, 한국언론정보학회)이 9월 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다. 이번 행사는 「조선왕조실록」 「선조신록」∙「선조수정실록」과 율곡 이이 「석담일기(경연일기)」 등 역사기록과 문헌에만 존재하던 조선 최초의 일간신문 「민간인쇄조보」의 가치를 446년 만에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번 국제학술심포지엄에는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마인츠 대학교의 크리스토프 레스케 교수, 중국 전매대학교의 아이홍홍 교수, 충남대 이윤복 박사, 경남대 김영주 명예교수 등이 발제자로 참석한다. 토론자로는 광운대 강태웅 교수, 연세대 최경은 교수, 포토저널리스트 강형원 기자가 이름을 올렸다. 이번 국제심포지움은 세계 최초의 일간신문으로 공인된 독일의 「아인코멘데 자이퉁 Einkommende Zeitungen」(1650년)과 중국의 「저보(邸報)」(1638년)보다 조선의  「민간인쇄조보」(1577년)가 앞서 간행되었다는 사실을 학술적으로 논의하는 장으로 마련되었다.  

 

◎  영천역사박물관에 소장된 「민간인쇄조보」(경상북도 유형문화재 521호)는 대중성과 독이성, 상업성까지 갖춘 국내 최초의 활자 일간신문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역사기록과 문헌에 존재했던 신문이자, 140년 전 근대 언론 신문학자들이 그토록 찾고자 한 신문이 바로 민간인쇄조보이다. 민간인쇄조보는 국내 문화재적 가치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자료라는 사실이 이번 국제학술심포지움을 통해 검증된다.  

 

◎  이번 행사의 주최 기관인 영천역사박물관 천진기 관장은 “세계 최초 일간신문’으로 평가되기 위한 국제심포지엄 첫 행사를 통해 독일보다 73년 앞서 발행된 <민간인쇄조보>와 함께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본인 불국사 석가탑 사리공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하)>)과 더불어, 인쇄문화유산 선진대국으로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하게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  공동 주최 기관인 한국언론정보학회 김은규 학회장은 “우리나라는 1508년부터 조보를 발행하기 시작했고, 이후 1577년 8월부터 100여 일 동안 발행된 민간 목활자 인쇄신문 기록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이 같은 우리의 인쇄문화 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며, 또한 각 국가별 인쇄미디어의 역사적 배경과 경과 과정을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하 추가 참고 자료)  

 

  선조 10(정축)년 민간업자들이 의정부와 사헌부에 허가를 취득하여 신속하게 대량 정보 전달할 수 있는 활자 조판 방식을 이용하여 왕실이나 중앙정부, 경기 한성부(서울) 소식을 매일 알리는 매체인 ‘민간인쇄조보’를 만들었다. ‘민간인쇄조보’는 활자의 나라인 조선(朝鮮)은 활자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조판방식 이용, 경제성과 상업성뿐만 아니라 신속성을 갖춘 신문 출판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민간인쇄조보’는 신문의 편집기능을 한껏 살려 첫 장에는 왕실과 육조(六曹) 등을 구분하여 당일 일어나는 소식을 전하고자 했다. 「선조실록」에 “마치 고사(古史)처럼 인출(印出)하였으니”, 「선조수정실록」에 “민간인들이 조보를 간행하는 행위는 사국(史局)을 개인이 설립하는 것이고 국가의 나쁜 점을 폭로하는 행위”, “민간인쇄조보를 간행한 이들을 대역죄로 몰아 관련자 30여명을 의금부에 하옥시켜 심한 고문을 한 후 멀리로 유배를 보냈다”는 「선조실록」에는 여러 기록은 전하고 있다. 당시에 사간원 사헌부 양사(兩司)와 의정부 관리들이 <민간인쇄업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나 그 관리들마저 퇴임시키는 큰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기록들을 볼 때 민간인쇄조보가 사회 비판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10년 1월1일자 한글판 대한매일신보(국한문판은 1월6일자) 칼럼과 안재홍도 일제강점기 조선일보에 게재한 안재홍의 ‘조선신문사론’(1927년 1월 5~9일, 3회)에서 선조 11년(1578)에 관보(조보)를 인행(印行) 관련 기사를 게재하며 조선 신문(報紙) 발행의 효시라고 언급하고 있다.  

    

<기자간담회(9월 6일 오전 10시30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강의실) 참석 및 관련 자료 문의는 한국언론정보학회 사무국 02-392-4426, kacis@kacis.or.kr로 문의 바랍니다. 점심 식사는 프레스센터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붙임자료 : 제5회 민간인쇄조보 국제학술심포지움 포스터 1부  

붙임자료 : 제5회 민간인쇄조보 국제학술심포지움 리플랫 1부  


 


한 국 언 론 정 보 학 회 장  

 첨부파일
제5회_민간인쇄조보_국제학술심포지움_포스터.png
0906_조보국제학술심포지움_리플랫_최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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